일기

살짝 훔쳐본 녹음의 밝기

에르제영 2024. 6. 9. 20:22

 

오늘도 역시 주말 출근을 하였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어찌보면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일은 좋으나 출퇴근 하는 길이 힘든다거나 존경하지 못할 사람들의 이상한 요구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내 일을 즐기고 있다.

 

출근을 했는데 컴퓨터가 맛이 갔다. 엊그제 퇴근할때까지만해도 멀쩡하던 컴퓨터가 한순간에 망가졌다.

여러번 재부팅을 해도 켜지지가 않아서 서브 PC를 부랴부랴 세팅해서 일을 하고 왔다.

 

잠깐 동안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그러나 이내 곧 마음을 추스렸다.

'그래, 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것 아니겠어?'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당장 AS 받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지만 그냥 흘러가는 헤프닝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뛰어서 버스를 잡아 탔다. 조금 일찍 퇴근을 했기에 바깥은 해가 아직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집에 다다랐을 때 쯤 버스 맨 뒷좌석에서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온 녹음이 나를 반겼다.

 

지친 마음에 여유있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훔쳐보듯이 녹음은 나를 느려지게 만들었다. 이런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하루를 완전히 다른 날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덥고 끈적였지만 버스를 내렸을 때는 바람이 나를 간질였고, 훔쳐보기만 했던 그 여유가 나를 살랑였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별난 내가 좋아  (0) 2024.07.21
장마철에는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0) 2024.07.10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0) 2024.06.23
오늘도 가만히 누워있다가  (1) 2024.06.12
요즘 일상 ...  (1)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