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여름끝의 바람을 맞으며 서있자

에르제영 2024. 8. 30. 21:55

 

오늘은 쉬는 날! 요즘 너무 바쁘게 달려왔다. 원래는 쉬는 걸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번 만큼은 쉬어야 겠다고 결정했다.

 

어제는 맥주를 조금 마셨다. 그래서 집에서 빈둥대던 중, 엄마와 통화하는데 누나가 조금 안좋은 일이 있다고 하였다.

누나와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평일 낮에 평화롭게 공원도 거닐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시원한 커피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불쑥 이런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누나 나는 항상 다음을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편히 쉬질 못해."

 

오늘도 그렇다. 쉬는 날이면 쉬는 날인데.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하지? 점심을 먹고 뭘하지? 저녁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중요한 결정부터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미리 다 정해놔야 하는 나의 성격으로 지금 보다는 다음을 생각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들.

 

누나는 단순하게 대답해줬다. "그냥 쉬어 뭘~ 아무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해."

맞다.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나를 맡겨도 되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있어보기로 결정했다.

 

집밖에 나가서 그늘에 잠깐 서있어도 보고.

목적 없이 바깥에 나가도 보고. 소파에 앉아서 여름 끝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기도 했다. 내일 뭐하지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지웠다.

 

그러니 조금 평화로워졌다. 베란다 바깥에 넓게 드리운 노을을 아무 걱정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가끔은 그런 날도 있어야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뭐할건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도 그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는 그런 단순한 하루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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